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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거북 등에서 털을 긁네

‘정성이 지극하면 그것이 부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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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기사입력 2021-02-18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세상에 쉬운 일이 없습니다. 저의 칠순잔치에 전국에서 수많은 도반 동지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뭐라고’하는 생각을 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우리 <덕화만발>입니다.

 

이렇게 뜻을 세우고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잘 쓰는 글도 아니고, 재주도 없으며, 더군다나 독수리 타법으로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은 제게는 가히 악전고투였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참여인원이 얼마 안 되어 그야말로 ‘거북이 등을 긁어 털을 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은 ‘괄모귀배(刮毛龜背)’라고, ‘거북이 등을 긁는다.’는 뜻입니다. 보람도 못 찾고 쓸데없는 수고만 한다는 말이지요. 원전(原典)은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족 삼소(三蘇) 중에서 장남인 소동파(蘇東坡 : 1037~1101)의 시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니까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도 그 결과가 시원찮으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허사가 됐을 때, 곧잘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 때의 잘못으로 애만 쓰고 아무런 보람이 없을 때, 우리는 노이무공(勞而無功), 만사휴의(萬事休意)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이 보기에는 성공을 못할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꼭 저와 같은 사람이지요. 그걸 ‘기름에다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다 조각을 한다.(畵脂鏤氷)’ 또는 ‘실컷 힘들여 게를 잡고서는 놓아준다.(捉蟹放水)’가 그것입니다.

 

‘게 등에 소금 치기’라는 속담은 두꺼운 게 껍질에 아무리 소금을 쳐 봤자 쓸데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괄모귀배’라는 성어는 ‘거북 등 위에서 터럭 긁어 보았자 어느 세월에 털방석을 만들어볼까?(刮毛龜背上 何時得成氈)’ 하는 소동파의 탄식에서 나온 말입니다. 소동파는 교유가 하던 마정경(馬正卿)이란 친구의 도움을 받고도 고생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글이라네요.

 

우리의 문장가들도 이 말을 다수 인용한 것이 고전에서도 보입니다. 고려의 문호(文豪) 이색(李穡 : 1328~1396)은 ‘처음엔 기린 뿔에 받히나 했더니, 점차로 거북 털을 긁기와 같구나.(初疑觸麟角 漸似刮龜毛)‘ 하며 ‘유감有感)’이란 시에서 읊었습니다. 기린의 뿔은 학문의 성취를 말한다고 합니다.

 

조선 초의 학자 서거정(徐居正 : 1420~1488)은 ‘만사는 참으로 말 머리에 뿔나기 같은데, 길은 막혀 어느새 거북 등 털 긁고 있네.(萬事眞成馬頭角 途窮已刮龜背毛)’ 라며 세상사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일 속에서 자신이 애써온 일이 허망할 뿐이라고 탄식했습니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해 두고 꾸준히 노력하라는 선현의 말씀은 많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고 한 양사언(楊士彦)의 시조 구절도 있습니다. 없는 거북의 털을 깎는 어리석은 일이 아닌, 박수 받는 일이라도 앞만 보고 나가다가도 의외의 상황이 닥치면 방향을 트는 것도 지혜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면 ‘초지일관(初志一貫)’이 중요하다고 황소같이 뚜벅뚜벅 가라는 성현의 말씀은 어찌하란 말인지요? 저는 덕화만발을 개설하면서 <지성여불(至誠如佛)>을 캐치프레이즈로 내 세웠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그것이 부처와 같다’는 뜻입니다.

 

어찌 부처를 일조일석에 이룰 수 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도 6년 설산 고행 끝에 우주의 진리를 깨치셨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도 근 20년 동안 티베트에서 불법을 수행해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 하셨으며, 우리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도 20여년 고행 끝에 대각(大覺)을 이루시고 마침내 부처의 위(位) 오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석가모니나 예수님이나 우리 소태산 부처님 같으신 상 근기(上根機)도 그렇게 오랜 세월 공들여 수행을 하신 끝에 부처를 이루셨는데, 저와 같은 하 근기(下根機)는 일러 무얼 하겠습니까? 이생에 못 이루면 내생에, 그것도 모자라면 영생을 두고 한 결 같이 이 길을 걸어가면, 어느 순간에 저도 대각의 함성을 지르며 부처의 경지에 우뚝 설날이 오지 않겠는지요?

 

지난 2월 15일자 저의 졸문 <타인능해(他人能解)>를 보고 어느 분이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스승님이야 말로 이 시대의 ‘운조루(雲鳥樓)’ 이십니다. 그 쌀보다도 더 귀한 말씀의 양식을 아무나 퍼 갈 수 있도록 늘 참 좋은 글을 내어 놓으심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나, 생각하며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그리고 가난하여 무엇인가 채우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 좋은 글로 양식이 되심을 늘 감사합니다. 큰 산 밑에 큰 인물 난다고, 지리산에서 그런 사람이 살고 있었군요. 지금의 큰 산은 우리 덕화 스승님 이십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훌륭한 동지들이 저와 함께 뜻을 함께 하는 한, 제게는 ‘거북 등에 털을 긁는 우를 범한다.’고 사람들이 비웃을지라도 저는 영생토록 이 한 길, ‘덕화만발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온갖 힘을 다 기울일 것이네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2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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