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덕화만발'德華滿發']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푸시킨 시는 달리 읽힙니다

- 작게+ 크게

덕산
기사입력 2020-09-03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러시아의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은 20대의 7년간을 유배지에서 보냈습니다. 삶의 전반부는 남쪽 오데사 부근에서, 후반부는 북쪽 시골 영지에서 보내며, 그는 유배가 끝나갈 무렵 한 편의 짧은 시를 씁니다.

 

이 시는 담담하고 관조적(觀照的)인 태도로 인생의 섭리에 대해 고찰한 시입니다. 그리고 서정적인 시어(詩語)와 낭만적인 비유를 통해 아련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지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설음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하느니라.」

 

어떻습니까? 우리가 학창과 청춘시절 힘들 때 마다 얼마나 소리쳐 외우던 시인가요? 이 시는 푸시킨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요. 총 2연으로 이루어진 서정시로,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겪고, 인생의 후반부에 있는 사람이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조하고 인간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근원적 고독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의 화자(話者)는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게 되고, 누구나 미래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현재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사에 좌절과 행복, 걱정과 기쁨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또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지나고 나면 다 그리움이 되기 때문에 모두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렇게 서정적인 시어와 낭만적인 비유를 통해 아련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제1연의 첫 구절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푸시킨은 한때 유배 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한 긍정(肯定)에 대해 깊이 천착(穿鑿)합니다.

 

그는 사람이 언제나 불행과 죽음이 닥칠 수 있으며, 그것이 지나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삶의 이치를 설명합니다. 이는 푸시킨이 이 시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스물여섯 살의 푸시킨은 이웃의 열다섯 살 귀족 소녀의 시화첩(詩話帖)에 이 시를 써주었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 괴로움을 겪은 푸시킨이 연하고 연한 삶의 꽃봉오리에 인생 조언을 해준 셈이지요. 머지않아 밀어닥칠 거친 비바람은 상상 못 한 채, 마냥 밝고 행복하기만 한 어린 처녀가 사랑스럽고 안쓰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희망가(希望歌)가 아닙니다.

 

앞부분만 잘라 읽으면 희망가지만, 끝까지 읽으면 절망가가 되기도 하지요. ‘현재는 괴로운 법’이라는 '인생 고해'의 직설(直說) 때문입니다. 오늘을 견디며 꿈꿔온 그 미래도 막상 현재 위치에 오면 꿈꾸던 것과는 달라 인생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삶이 나를 속였다는 배반감은 거기서 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다 지나간다.’는 덧없음의 치유력(治癒力)에 기대 현재를 견뎌냅니다. 그리고 과거가 된 아픔과 화해하지요. 지나간 것이라고 어찌 모두 아름답겠습니까? 철없던 지난날의 회한(悔恨)이 ‘혼탁한 숙취(宿醉)처럼 괴롭다’고 시인 자신도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나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이 삶이고, 삶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푸시킨도 우리처럼 ‘콜레라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1830년, 치사율 50%의 역병(疫病)으로 모스크바는 봉쇄되었고, 시인은 약혼녀를 남겨둔 채, 석 달간 작은 영지에서 자가 격리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이 코앞까지 밀어닥쳤던 그때, 그는 또 씁니다.

 

“그러나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생각하고 고통 받고자. 슬픔과 걱정과 불안한 가운데 내게도 기쁨이 있으리니.” 이렇게 푸시킨 그는 삶을 사랑했습니다. 예전엔 푸시킨 시가 너무 평범하고, 산문적이어서 이게 뭔가 싶었지요. 그런데 이만큼 살고 보니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진리라고 느껴지네요.

 

나라마다, 시대마다, 푸시킨 시는 달리 읽힙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고달픔은 과거의 역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전에는 미래를 향해 달리느라 괴로웠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며 아우성입니다.

 

전에는 앞만 보느라 정신없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지나간 것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마음이 없으면, 현재를 이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푸시킨의 시를 다시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현실이 차단해버린 희망의 불씨를 시로써 되살리며 낙심한 서로를 위로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나눔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