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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생사의 갈림길

사는 길은 서로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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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기사입력 2020-08-25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슬픔의 땅, 팔레스타인에는 2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해이고, 하나는 사해(死海)입니다. 똑같이 요단강에서 흘러 들어가는 바다인데 갈릴리 해는 물이 맑고, 고기도 많으며, 강가엔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사해는 더럽고 바다에 염분이 너무 많아 고기도 살 수 없고, 새들도 오지 않으며, 어떠한 생물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똑같이 요단강 물줄기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바다와 사해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왜 하나는 생명이 숨 쉬는 바다가 되고, 하나는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었을까요?

 


요단강 때문도 아니고, 토양 때문도 아니며, 기후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습니다. 갈릴리 해는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 흘러 들어오면 반드시 한 방울은 흘러 나갑니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사해는 들어온 강물을 절대 내어놓지 않습니다. 한 방울이라도 들어오면 자신의 것이라고 그것을 가져버리고, 한 방울의 물도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해는 해발고도가 ‘-430.02m’로 지구상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육지이기 때문에 주위의 물이 여기에 흘러 들어가면 증발 이외에는 나갈 길이 없습니다.

 

생명의 바다와 죽은 바다! 받은 만큼 주는 바다와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바다! 사람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해가 될 수도 있고 갈릴리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족할 것 없어 한없이 살고 싶었던 중국의 진시황도, 영원한 소녀의 이미지 오드리 햅번도, 세계 주먹을 재패하여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던 미국의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도,

 

돈이라면 부족할 거 없는 스티브 잡스도, 영원할 거 같았던 북한의 김일성도, 재물과 명예를 다 가진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도, 우리를 한껏 웃겨주던 코미디계의 이주일도, 왕복이 없는 인생열차에서 시간표 없이, 한 번도 돌아온 적이 없는 인생 왕복열차를 못 탔습니다.

 

주면 받는 것이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안 주면 못 받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요? 주면 살고 안 주면 죽는 것입니다. 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는 길은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기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생병의 바다 갈릴리바다와 같이 너도 이롭고 나도 이롭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요?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인 것입니다. 자리이타는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남을 위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입니다.

 

자리(自利)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정진하여 수도(修道)의 공덕을 쌓아 그로부터 생기는 복락과 지혜 등 과덕(果德)의 이익을 자기 자신만이 향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하여 이타(利他)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의 구제(救濟)를 위해 닦는 공덕을 말하지요. 이 두 가지 ‘자리와 이타’를 합해야 자리이타의 도(道)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이타의 도는 인간에게만 국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비롯한 금수초목 까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우리는 동포(同胞)라고 합니다.

 

즉, 동포에 의해 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동포의 피땀이 더 많이 공급되었기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만일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성공되었다 여기고 이익을 독점하려고 한다면, 바로 동포 배은자(背恩者)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할수록 더욱 동포에 보은하여 자리이타의 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행복 추구는 개별적인 자아 욕구의 충족에 있지 않습니다. 나와 동포가 둘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타인의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없애주려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자비심으로 보살피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모든 존재가 성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고 세상에 머물며 제도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서원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무한하게 자비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보살의 마음은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침내 온 우주와 함께 하는 한마음인 것’입니다. 생사의 갈림길은 바로 너도 이롭고 나도 이로운 더불어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 런지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8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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