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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타이타닉호의 교훈

'반바지 차림으로 배를 등진 세월호 선장의 모습'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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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기사입력 2020-08-21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영화 《타이타닉》을 안 본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영화 ‘타이타닉’은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했던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를 각색하여 1997년 개봉한 미국의 재난, 로맨스 영화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을 맡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릿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과정을 실제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 래히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아래는 ‘찰스 래히틀러’의 타이타닉 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을 짧게 요약 한 내용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 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 말고 어서 타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거예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 부자인 ‘애스터’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 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 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 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이타닉 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 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사나이의 위대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겐하임 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 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 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오.”

 

미국 메이시(Macy’s)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는 “저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 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 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再嫁)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는 여장(女裝)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 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에는 모두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6년 전 ‘세월 호’ 침몰 당시 반바지 차림으로 배를 등지는 선장의 부끄러운모습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노블레스 오빌리주(Noblesse oblige)’정신으로 책임을 다하는 선진국 국민이 될지 걱정이네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8월 2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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