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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대용약겁(大勇若怯)

참된 용자(勇者)는 겁쟁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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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기사입력 2019-01-21

이정랑 언론인/논설고문/중국고전연구가

 

바로 앞(‘대지약우(大智若愚)’ 1월13일자 칼럼)에서 인용한 소동파의 글 중에 “참된 용사는 겁쟁이처럼 보이고, 참된 현인은 바보처럼 보인다.”는 대목이 있었다. 본래 대담한 사람은 오히려 담이 적은 척한다. 표면적인 ‘겁’ 속에 ‘큰 용기’를 숨기는 것이다. 대담하면서도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담이 클 뿐 아니라 지혜가 남다르고 원대한 목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약하고 겁 많은 속에 감추어진 용기는 확실한 성공을 거둘 조건이 된다.

 

‘대용약겁’의 모략 사상은 노자와 장자의 이론 체계에 반영되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미 살펴본 대로 “가장 떳떳한 사람은 마치 겸손한 것 같고,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은 마치 졸렬한 것 같고, 가장 말 잘하는 사람은 마치 말더듬이 같다”는 구절이 보인다. 인류의 모략사상은 철학을 이론적 기초로 삼는다. 노자의 ‘도덕경’은 소박하지만 변증법적이고 일관성 있는 모략 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 ‘대용약겁’은 철학적으로 본질과 허구의 상호관계를 반영하며, 또 ‘서로 반대되면서도 일정한 조건 아래 서로 어울린다.’는 ‘상성상반(相成相反)’의 모순 운동을 반영한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유비(劉備)는 소패성(小沛城)에서 여포(呂布)에게 패한 후 한 몸 의지할 곳 없어 하는 수 없이 조조(曹操) 밑으로 들어갔다. 조조는 유비를 허창(許昌)으로 데리고 갔는데, 목적은 유비를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었다. 유비도 조조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조 밑에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조조가 자신의 큰 뜻을 눈치 채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더 컸다. 그래서 유비는 집 뒤에다 채소밭을 일구어 손수 물을 주며 가꾸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조조가 유비를 술자리에 초대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는데 갑자기 날이 흐려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번개가 번쩍이며 천둥이 치자 조조는, 용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으며 날 수도 숨을 수도 있어 인간에 비유하자면 단숨에 구천 하늘을 날 수 있는 일대의 영웅과도 같다고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지금 이 세상에서 영웅은 누구냐고 물었다. 유비는 원술(袁術)‧원소(袁紹)‧유표(劉表) 등을 꼽았다. 조조는 껄껄 웃으며 손을 젓고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뱃속에다가 지혜와 모략을 감추고 있는 자이며, 우주의 기밀을 품고 있다가 천지로 토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비는 그런 영웅이 누구냐고 물었다. 조조는 손가락으로 유비를 가리킨 다음 다시 자신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지금 천하에서 영웅이라고 한다면 그대와 나 둘 뿐이지요”

 

속마음을 간파당한 유비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때 마침 천둥과 번개가 치며 세찬 비가 쏟아졌다. 조조는 왜 수저를 떨어뜨렸냐고 물었다. 유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성인께서 말씀하시길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반드시 무슨 변화가 생긴다’고 하셨지요. 그 위세가 정말 굉장하군요.”

“천둥 번개야 천지 음양이 부딪쳐 나는 소리인데 무얼 그리 두려워한단 말이오?”

“저는 어려서부터 천둥소리에 겁을 내서, 천둥소리만 들리면 숨을 곳이 없나 늘 걱정했습니다.”

 

이에 조조는 냉소를 흘리며, 유비는 보잘것없는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이일이 있은 후 유비는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에게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뒤뜰에다 채소밭을 일군 것은 조조로 하여금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하기 위해서였다. 수저를 떨어뜨린 것은 조조가 나를 영웅이라고 한 말에 놀랐기 때문이었고, 천둥 번개가 두렵다고 한 것은 조조가 나를 소인배로 여기도록 함이었다. 그래야 조조가 나를 해칠 마음을 품지 않을 것 아닌가?”

 

훗날 한 시인은 이 일을 두고 다음과 같이 감탄했다.

 

갈 곳 없어 호랑이 굴에 몸을 맡겼다가
자신이 영웅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더라.
지나가는 천둥 속에 교묘히 정체를 감추니
급한 자리 피하는 솜씨가 참으로 귀신같구나.

 

이런 일이 있은 뒤 유비는 조조에게 원술을 공격할 테니 약간의 군사를 달라고 요청했고, 조조는 별다른 생각 없이 허락했다. 유비는 밤을 새워 군기와 군마 그리고 장군을 상징하는 도장을 챙겨 서둘러 허창을 떠났다. 관우와 장비가 왜 이렇게 서두르느냐고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나는 새장에 갇힌 새와 같았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았지. 이번 출동은 물고기가 바다로 나가고 새가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네. 더 이상 그물에 갇혀 있을 수야 없지!”

 

조조의 모사 곽가(郭嘉)는 조조가 유비에게 군대를 주어 서주(徐州)로 진군케 했다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조조에게 달려가 유비는 큰 뜻을 품고 있으며 민심까지 얻고 있는 인물로 남의 밑에 오래 있을 위인이 결코 아닌지라 무슨 일을 도모할지 모른다며, 이번에 군대를 그에게 맡긴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며 속히 조치를 거두시라고 간했다. 그러나 조조는 곽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채소밭이나 가꾸고 천둥 번개에 놀라는 것을 보면 유비가 큰일을 꾀할 인물이 아닌데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보던 조조는 아뿔싸, 유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렇게 유비는 자립하여 삼국이 정립하는 국면을 연출해냈다. ‘겁’으로 ‘용기’를 숨김으로써… 유비는 마침내 큰 듯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유비다운 도회지술(韜晦之術)이요 대지약우(大智若愚)를 겸비한 전형적인 책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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