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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인생을 보는 눈

여의법풍(如矣法風) "긍정적 적극적 정열적으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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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기사입력 2018-10-25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제가 오래 전 인생을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다가《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하고 보니까 너무나 인생을 엉터리로 보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냥 옛날대로 살다간 곧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원불교여의도교당의 '법풍(法風)'을 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각 어린이, 학생, 일반교도 전체를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실시했습니다. 여덟 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얻어낸 결과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뛴다.

둘째, 전 교도가 화합하고 단결한다.


이 두 가지가 저 유명한 <여의법풍(如矣法風)>입니다. 저는 그 이후, 인생을 보는 눈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뛴다.’를 ‘인생을 보는 눈’으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제 5편 <자로초견(子路初見)>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느 날 공자가 조카 공멸(孔蔑)을 만나 물었습니다. “네가 벼슬한 뒤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대답했습니다.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나랏일이 많아 공부할 새가 없어 학문이 후퇴했으며

둘째, 받는 녹이 너무 적어서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공무에 쫓기다 보니 벗들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공자는 이번엔 공멸과 같은 벼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제자 복자천(宓子賤 : BC 521~BC445)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복자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글로만 읽었던 것을 이제 실천하게 되어 학문이 더욱 밝게 되었고,

둘째, 받는 녹을 아껴 부모님과 친척을 도왔기에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셋째, 공무가 바쁜 중에 시간을 내어 우정을 나누니 벗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어떻습니까? 공멸과 복자천! 이 둘은 같은 지위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똑같은 수입을 가지고도 한 사람은 세 가지를 잃었다고 푸념하는데, 한 사람은 오히려 세 가지를 얻었다고 감사해 합니다.


공멸과 복자천의 차이가 있다면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인생을 보는 눈이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뛰는가 여부에 인생의 행복이 달린 것이 아닌가요? 행복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인생 독본』에 나오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맹수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치다보니 가파른 낭떠러지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절벽 아래로 늘어 뜨러져 있는 넝쿨을 붙잡고서 밑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절벽 아래에는 커다란 독사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다시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아래로 내려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그네는 하는 수없이 잠시 동안 절벽 한가운데 매달려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의 눈앞에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나그네는 지금 자신이 처해있는 비극적인 현실을 깜빡 잊어버린 채 손을 뻗어 그 열매를 따먹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날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몰(埋沒)된 인생을 향한 고발입니다. 나그네를 보십시오. 죽음의 덫에 걸려있습니다. 죽을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자기 앞에 있는 빨간 열매에 마음이 빼앗깁니다. 자신의 재색명리(財色名利) 대해서만 관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실존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중생(衆生)의 삶을 돌이켜보면 대개는 그렇게 삽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습니다. 앞을 생각 못하고 삽니다. 배신과 음모를 밥 먹듯이 합니다. 단견(短見)으로 인생을 보면 안 됩니다. 반드시 인과의 진리가 소소영령(疎疎英靈)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힘들고 어렵다고 지금 실패했다고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지금의 실패도 긴 여정의 산을 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긴 안목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오늘 잘됐다고 오만하지 않으며, 지금 실패했다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오직 인생을 통으로 그리고 진리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소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일 것입니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돈이나 지식이나 권리가 많으면 그것이 도리어 죄악을 짓게 하는 근본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바른 뒤에야 돈과 지식과 권리가 다 영원한 복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긴 안목으로 인생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우에는 괘념(掛念)치 말고 공덕(功德) 짓기에 힘을 쓰면 자연 큰 공과 큰 대우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이렇게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0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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